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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vs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녀(Her, 2013)’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는 겉보기에 완전히 다른 장르처럼 보인다. 전자는 조용한 분위기의 미래적 러브스토리이고, 후자는 정신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멀티버스 액션 코미디다. 그러나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관계 속에서 진짜 나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 두 작품은 기술과 차원의 간극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과 감정, 그리고 정체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두 영화는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자아와 관계, 존재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지만, 모두 인간 내면의 깊숙한 불안과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1. 연결을 갈망하는 자아, ‘그녀’의 AI 사랑 vs ‘에브리씽’의 다중 자아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미래 사회에서 외로운 남성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본인의 삶에서는 진정한 연결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설정은 단순한 SF적 상상이 아니라, 기술에 익숙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단절된 현대인의 외로움을 상징한다. 한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블린(양자경)은 다중 우주 속의 수많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세금 문제와 가족 갈등,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는 연결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극단적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에서 주인공은 ‘외부 대상’과의 연결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거나 깨닫게 된다. 테오도르는 비인간 존재인 사만다를 통해 인간적 감정을 되찾고, 에블린은 무수히 다른 삶을 살아온 자아들을 통해 결국 지금 자신의 삶이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영화의 연결 지점은, 바로 ‘진짜 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통찰이다.

 

2. 사랑은 환상인가, 해답인가: 비물질적 연애와 감정의 우주적 확장

‘그녀’는 감정적으로 매우 섬세한 영화다. 사만다는 몸이 없는 인공지능이지만, 테오도르와 깊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 사랑이 완벽한 판타지가 아니며, 결국 사만다는 스스로의 자아 확장과 철학적 탐구를 위해 테오도르를 떠난다. 이별은 아프지만, 테오도르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성숙해진다. ‘에브리씽’에서는 사랑이 훨씬 더 복잡하게 다뤄진다. 에블린과 남편 웨이먼드는 오랜 결혼 생활을 통해 감정적으로 지쳐 있지만, 멀티버스를 통해 웨이먼드의 다른 가능성들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는 "착하게 사는 것이 무기다"라는 웨이먼드의 철학을 통해, 사랑이란 혼돈 속에서도 서로를 붙드는 감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영화 모두에서 사랑이 ‘궁극적 해답’이라기보다는, ‘자기 성찰의 계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테오도르와 에블린은 사랑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사만다와 웨이먼드는 거울처럼 주인공에게 ‘너는 어떤 사람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는 사랑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을 재확인시킨다.

 

3. 기술과 멀티버스, 인간을 도와주는가? 혼란스럽게 하는가?

‘그녀’는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인간의 외로움을 덜어주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만다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그 과정에서 테오도르는 감정의 진실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사만다는 수천 명의 인간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사랑까지 느끼는 존재로 진화하며, 결국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는 인간이 만든 기술이 오히려 인간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에브리씽’에서는 다중 우주라는 설정이 기술이라기보다는 철학적 개념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가능성과 현실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것은 인간에게 끝없는 자유와 선택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역시 혼란을 야기한다.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지금 여기’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영화는 그 질문을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두 영화는 기술(혹은 개념)이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혼란도 증폭시킨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고차원적 존재나 멀티버스가 아니라, 작고 사소한 현실 속 감정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론: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기

‘그녀’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서로 다른 장르적 외형을 지녔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에서는 깊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둘 다 외롭고 불완전한 개인이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고도화된 기술이나 다중 우주라는 설정은 오히려 그 여정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두 작품을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연결 없이 성립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나는 얼마나 소중한가?" ‘그녀’는 조용한 이별을 통해, ‘에브리씽’은 정신없는 폭발을 통해 이 질문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답하지만, 결국 두 영화는 모두 ‘지금 여기’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