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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을린 사랑
영화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의미, 정체성의 본질, 그리고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영화다.

영화는 어머니 나왈이 남긴 유언을 따라 쌍둥이 남매 잔과 시몽이 중동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며,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가족의 비밀과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단순한 혈연 이상의 의미를 깨닫고,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1. 가족은 혈연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잔과 시몽은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던 가족의 개념이 완전히 흔들린다. 그들에게 어머니는 단순히 헌신적인 부모였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과 고통이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가족은 단순한 혈연 관계가 아니라, 경험과 기억, 그리고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개념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차연(différance)' 이론과 연결된다. 데리다는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해석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가족의 의미 역시 단순한 혈연을 넘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롭게 해석되는 개념으로 변화한다.

그렇다면, 가족은 단순한 생물학적 관계인가, 아니면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형성되는가? 영화는 가족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으며,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 정체성은 과거에 의해 결정되는가?

잔과 시몽은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경험한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체성은 단순히 출생의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이야기와 기억을 통해 형성된다.

이러한 개념은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 이론과 연결된다. 리쾨르는 인간의 정체성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통해 구성되고 변화한다고 보았다. 영화 속 쌍둥이 남매 역시 어머니의 삶을 추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해 나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경험하는 것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는가? 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이 단순하지 않으며,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3.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영화는 과거의 사건들이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머니 나왈이 겪었던 전쟁과 고통은 단순한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그녀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상처가 된다.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잔과 시몽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역사의 천사(Angelus Novus)' 개념과 연결된다. 벤야민은 과거의 사건들이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밀려오며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과거는 단순히 끝난 일이 아니라, 현재를 형성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거의 상처를 단순히 잊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통해 현재를 이해해야 하는가? 영화는 우리가 과거를 직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4. 결론: <그을린 사랑>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단순한 가족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의미, 정체성의 본질, 그리고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영화는 가족은 혈연만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정체성은 과거에 의해 결정되는가,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