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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퀸즈 갬빗

 

더 퀸즈 갬빗(The Queen’s Gambit, 2020)은 체스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지만, 단순한 스포츠 성장물이 아닌, 한 천재 여성의 내면 세계와 고독, 중독, 자아의 균열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베스 하먼’은 천부적인 체스 실력을 지닌 인물이지만, 동시에 고아로서의 상처,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편견, 그리고 자기 파괴적 충동 속에서 스스로를 다듬어가며 성장한다. 이 작품은 ‘체스’라는 게임을 통해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비유하며, 베스의 이야기를 통해 성공과 상처, 고립과 회복의 여정을 함께 보여준다.

 

1. 천재의 고독, 천장은 왜 늘 혼자일 수밖에 없는가

베스 하먼은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약물에 중독되고, 동시에 체스라는 게임에 눈을 뜬다. 그녀는 체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하지만, 그 안에서 점점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를 만든다. 그녀가 탁월한 재능을 보일수록, 주변 세계와는 점점 멀어지고, 천재라는 타이틀은 그녀를 고립시키는 무언의 벽이 된다. 천재라는 존재는 종종 사회의 외부에 놓인다. 베스는 경기에서 이길 때마다 찬사를 받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무너질 때 함께 곁에 있어주지 않는다. 그녀는 연습 파트너가 부족했고, 그 누구도 그녀의 깊은 외로움이나 불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여성으로서 체스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베스는, 숱한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능력을 입증해야 했고,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혹독하게 몰아간다. 그녀가 호텔방에서 홀로 술과 약에 취해 쓰러지는 장면들은 단순한 중독이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의 무게를 상징한다. 체스판 위의 승부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이며, 그 안에서 베스는 언제나 혼자였다. 더 퀸즈 갬빗은 이 고독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게 바라보며, 천재란 타이틀이 어떻게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조명한다.

 

2.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싸우는 두 번째 경기

베스 하먼의 또 다른 싸움은 체스가 아닌 사회 속에서의 싸움이었다. 1960년대, 체스는 철저히 남성 중심의 세계였고, 베스는 그 안에서 ‘예외적 여성’이 아니라 ‘동등한 경쟁자’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은 때로는 위협이 되었고, 때로는 과소평가되었다. 남성 선수들은 그녀를 이기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성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성이 천재로 묘사될 때 따라오는 불편한 시선들, “어떻게 이런 실력이 가능하지?”, “진짜 네가 둔 거 맞아?” 같은 질문은 베스에게 매번 검증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다. 그녀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 외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고, 외모나 사생활 같은 비체스적인 요소들조차 평가받아야 했다. 그녀가 승리를 거듭해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항상 질문받는다. 드라마는 이를 강하게 부각하지 않으면서도, 베스가 겪는 순간순간의 미묘한 차별과 긴장감을 통해 시대적 배경과 젠더 이슈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체스는 철저한 실력주의의 세계지만, 그조차도 사회적 배경과 무관할 수 없음을, 더 퀸즈 갬빗은 조용한 태도로 말해준다.

 

3. 중독과 통제, 체스판 안팎에서의 삶을 다시 세우기

베스 하먼은 천재이지만 동시에 자기파괴적인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복용한 진정제는 그녀의 사고를 비현실적으로 만들었고, 이후 술, 약물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중독은 그녀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통해 비현실적인 집중력과 몰입을 경험한다. 이 아이러니한 관계가 작품의 핵심 중 하나다. 처음엔 약물에 의존해 체스를 연구하던 베스는, 나중에는 무의식 상태에서도 복잡한 경기를 시뮬레이션할 정도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인간관계를 모두 끊은 채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통제력을 잃은 그녀는 더 이상 체스판에서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경기에서 패배하며 바닥을 친다. 하지만 회복의 과정은 인상적이다. 단순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중독을 끊은 것이 아니라, 베스는 스스로 ‘통제력’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친구들의 존재, 경쟁자의 조언, 그리고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는 그녀가 체스를 다시 사랑하고, 삶의 의미를 체스 외에도 찾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 경기에서 단 하나의 알약도 없이, 완전한 집중과 평정 속에서 자신의 경기를 완수한다.

 

더 퀸즈 갬빗: 정적인 체스판 위에서 펼쳐지는 가장 역동적인 성장 서사

더 퀸즈 갬빗은 체스를 소재로 하지만, 실상은 인간 내면의 가장 복잡한 감정과 싸움을 다룬 작품이다. 천재 여성이라는 존재가 세상과 자신 안의 기대에 맞서 싸우는 과정, 고독과 중독에 무너지면서도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영감을 준다. 체스판 위에서 승리를 거두는 순간보다, 베스 하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시 조율해 나가는 장면들이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드라마를 본 우리는 문득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나는 나를 이기고 있는가, 아니면 무너지고 있는가?" 더 퀸즈 갬빗은 화려한 전략과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의 가장 치열한 게임이 어디서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