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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의 <라스트 나잇 인 소호(Last Night in Soho, 2021)>는 단순한 미스터리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얽히는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기억과 환상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런던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유학 온 학생이다. 그러나 그녀는 기숙사를 떠나 낡은 하숙집에서 생활하며, 매일 밤 1960년대 런던의 화려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과거의 가수 지망생 샌디(아냐 테일러-조이)와 연결되지만, 그 화려한 환상은 점점 어둡고 위험한 현실로 변해간다. 영화는 과거의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어두운 진실을 교차시키며, 시간이라는 요소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1. 과거는 정말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존재하는가?
영화에서 엘리는 1960년대 런던을 동경하며, 과거가 현재보다 더 아름답고 순수했다고 믿는다. 그녀는 마치 꿈처럼 그 시대를 경험하지만, 점차 그 시절이 어둡고 폭력적인 현실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종종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이러한 개념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망각과 역사에 대한 철학과 연결된다. 니체는 인간이 과거를 미화하거나 특정 기억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한다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엘리는 과거를 동경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라 폭력과 억압이 뒤섞인 현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가? 인간은 왜 특정 시대를 이상화하는가? 영화는 과거를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2.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인가?
엘리가 과거와 연결되는 방식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시간 속에서 얽힌 두 여성의 경험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샌디의 과거가 엘리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엘리는 샌디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이는 시간의 흐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지속(Duration)’ 이론과 연결된다. 베르그손은 시간이 단순히 연속된 순간들의 집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엘리가 과거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시간의 연속성과 상호작용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시간은 단순한 과거와 현재의 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인가? 우리는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를 변화시키고 있는가? 영화는 우리가 시간을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해야 함을 암시한다.
3. 기억과 환상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엘리는 과거를 단순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샌디의 고통과 두려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결국에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는 기억과 환상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현실을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개념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Simulacra)’ 이론과 연결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실제 경험보다 가상의 이미지나 기억을 더 진짜처럼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엘리가 점점 샌디의 기억 속에 빠져들어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과정은, 우리가 기억과 환상을 어떻게 현실로 착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과거의 기억이 우리의 현재를 왜곡할 수 있는가? 영화는 기억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4.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단순한 공포나 미스터리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간의 흐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기억과 환상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영화는 과거는 정말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존재하는가, 시간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인가, 기억과 환상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며,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요소임을 강조한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