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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리스
영화 러브리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Andrey Zvyagintsev) 감독의 <러브리스(Loveless, 2017)>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랑이 결여된 인간 관계, 가족의 붕괴,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영화는 이혼을 앞둔 부부 젠냐와 보리스, 그리고 그들의 아들 알렉세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애정이 완전히 사라졌고, 각자 새로운 연인과의 삶을 꿈꾸며 이혼을 서두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들의 아들은 철저히 방치되고, 결국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모는 아들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그들의 무관심과 감정적 단절은 여전히 깊이 자리 잡고 있다.

 

1. 사랑이 없는 관계는 지속될 수 있는가?

젠냐와 보리스의 결혼 생활은 이미 오래전에 감정이 식어버렸다. 그들은 서로를 향한 애정보다는 불만과 냉소로 가득 차 있으며, 아들의 존재조차도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족은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의무와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관계는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사르트르는 인간 관계가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서로를 억압하고 고통을 주는 관계로 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영화 속 젠냐와 보리스는 서로에게 사랑이 아닌 증오와 무관심을 품으며, 그들의 관계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지속된다.

그렇다면 사랑이 사라진 관계는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인간은 사랑 없이도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는가? 영화는 사랑이 없는 인간 관계가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지를 보여주며,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한다.

 

2.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감정 없이 유지될 수 있는가?

알렉세이는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그는 부모의 다툼 속에서 감정적으로 방치되었고, 그 결과 아무도 그의 실종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부모에게 그는 이미 감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것은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 개념과 연결된다. 위니콧은 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완벽한 사랑을 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정서적 안정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영화 속 부모는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주지 않으며, 자녀를 하나의 짐처럼 취급한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가? 부모가 자녀에게 감정을 주지 않을 때, 자녀는 어떤 영향을 받는가? 영화는 사랑 없는 부모 자식 관계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영화에서 젠냐와 보리스는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적 교류 대신, 휴대폰과 SNS에 몰두하며 자신의 삶을 포장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은 인간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는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이해관계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이론과 연결된다. 바우만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점점 더 가벼워지고, 깊이 있는 감정 교류가 줄어든다고 보았다. 즉, 우리는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는 언제든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우리는 왜 점점 더 관계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는가? 영화는 사랑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감정의 부재가 얼마나 인간을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4. 결론: <러브리스>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영화 <러브리스>는 단순한 가족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이 결여된 인간 관계, 부모와 자식의 유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점점 사라지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영화는 사랑이 없는 관계는 지속될 수 있는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감정 없이 유지될 수 있는가, 현대 사회에서 감정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관계 속에서 사랑과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러브리스>는 사랑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황폐한지를 보여주며, 인간 관계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관계에서 진정한 감정을 나누고 있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남기며, 관객들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