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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2017)은 마블 코믹스 기반의 X-Men 시리즈 중 하나이자,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마지막을 담은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틀을 넘어서, 노화, 상실, 부성애,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품은 진중한 드라마에 가깝다. 쇠약해진 몸, 죽어가는 세대, 희망 없는 미래 속에서 한 영웅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선택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닌 ‘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로건은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슈퍼히어로 장르 안에서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으로, 장르의 경계를 허문 감정적 피날레라 할 수 있다.
1. 쇠퇴하는 영웅, 초인의 늙음이 주는 현실성
영화 속 로건은 우리가 기억하는 강력하고 날렵한 울버린이 아니다. 그는 나이가 들며 치유 능력이 현저히 약해졌고, 몸은 상처투성이에다 과음과 흉터로 인해 정신도 지쳐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불사의 초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이제는 부축 없이는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다. 이러한 설정은 슈퍼히어로 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히어로는 보통 ‘언제나 강하고 무너지지 않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로건은 그런 틀을 의도적으로 파괴한다. 영화는 로건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는다. 그는 자신이 지켜왔던 모든 것들—엑스맨, 동료들, 젊음—을 잃었고, 이제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캐릭터의 쇠퇴가 아니라, 관객 자신에게도 닿는다. 누구나 늙고, 약해지며, 과거의 영광을 뒤로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로건은 그 과정을 영웅이라는 틀 안에서 진솔하게 보여주며, 울버린이라는 상징을 넘어 ‘인간 로건’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그려낸다.
2. 부성애와 보호 본능, 로라와의 관계가 주는 감정적 중심
로건은 영화 초반, 로라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녀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로라가 그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둘의 관계는 단순한 동행을 넘어 ‘가족’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라는 로건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그림자이자, 잃어버린 미래의 가능성이다. 그녀는 야성적이고 공격적이지만, 동시에 상처받고 외로운 존재다. 로건은 그녀에게 점점 마음을 열며, 자신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다. 그는 로라를 통해 잊고 있던 감정을 회복하고, 오랜 시간 잃어버렸던 보호 본능과 책임감을 되찾는다. 특히 영화 후반, 로건이 목숨을 걸고 로라를 구하는 장면은 전통적인 슈퍼히어로의 희생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한 아이를 지키는 아버지’가 된다. 이 차이는 감정적으로 매우 큰 울림을 주며, 로건이라는 작품을 한층 성숙한 이야기로 끌어올린다. 로라가 마지막에 “Daddy”라고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단지 유전자적 연결을 넘어, 진정한 가족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3. 히어로의 마지막, 폭력과 희생 너머의 의미
로건은 폭력적인 장면이 적지 않은 영화다. R등급임을 활용해 잔혹한 전투 장면들을 거침없이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액션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로건의 전투는 이제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생존의 몸부림’이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다. 그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은, 무의미한 전쟁이 아니라 ‘존엄한 선택’이다. 로건은 영화 내내 죽음을 원하지만, 로라를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 힘까지 끌어낸다. 이 과정은 단지 ‘영웅의 전사’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또한, 로건은 슈퍼히어로의 존재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과거의 히어로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로건은 유일하게 남은 ‘살아 있는 전설’이지만, 그는 그 전설을 잊고 싶어 한다. 그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전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지만, 로건은 현실에서 그 전설을 마무리하고 떠난다. 그는 이름 없는 무덤에 묻히며, ‘로건’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결론: 늙어가는 영웅이 남긴 인간적인 유산
로건은 울버린이라는 슈퍼히어로의 마지막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깊이 있는 드라마다. 쇠퇴해가는 영웅, 아버지로서의 책임, 그리고 존엄한 죽음은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물이 아닌, 감정의 무게를 담은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로건은 초인의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인간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웅이 아닌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을까?" 로건은 영웅의 정의를 다시 쓰며, 결국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