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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 스튜디오는 오랫동안 가족, 삶, 죽음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안에서 섬세하게 다뤄왔다. 그중에서도 소울(Soul, 2020)과 코코(Coco, 2017)는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민감한 소재를 픽사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두 작품이다. 각각 재즈 음악과 멕시코 전통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기억’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둔다.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접근 방식과 감정의 방향, 메시지의 결론은 사뭇 다르다. 이 글에서는 소울과 코코를 통해 픽사가 어떻게 죽음을 이야기하는지를 비교하며, 그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삶의 태도와 철학을 살펴본다.
1. 죽음 이후를 바라보는 소울과 코코, 어디에 초점이 있는가
코코는 멕시코의 전통 명절인 ‘죽은 자의 날(Día de Muertos)’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미겔이라는 소년이 우연히 조상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죽은 자들과의 연결, 가족의 유산, 기억의 중요성을 배운다. 이 세계관은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존재가 이어진다고 전제하고 있으며,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한 진짜로 죽지 않는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소울은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택한다. 주인공 조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태어나기 전의 세계(You Seminar)'와 '사후 세계'를 오가며,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꿈(재즈 뮤지션)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었는지를 되돌아본다. 소울은 죽음 이후의 풍경보다, 오히려 ‘삶 이전’과 ‘삶 자체’에 대한 관찰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즉, 코코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남은 자'의 기억과 가족의 연결성을 조명하는 반면, 소울은 자아의 정체성과 ‘삶의 순간들’을 깨닫는 철학적 여정을 담는다. 하나는 감성적이고 문화적인 접근, 다른 하나는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접근이다.
2. 주인공의 성장 방식, 관계 중심 vs 자아 중심
코코의 미겔은 가족과의 갈등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음악을 하고 싶지만, 집안에서는 음악이 금기다. 조상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상의 세계로 가게 되면서, 그는 가족의 진실을 알아가고, 조상과 현재의 연결을 회복한다. 미겔의 여정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며, 결국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다. 반면 소울의 조는 철저히 개인의 꿈과 욕망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데뷔 무대를 앞두고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영혼의 세계에서 22라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이 둘의 대화와 갈등을 통해 조는 ‘꿈을 이루는 것이 곧 삶의 목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조의 여정은 누군가와의 관계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처럼 코코는 유대와 전통의 회복을 통해 주인공을 변화시키고, 소울은 자기 내면의 깨달음으로 주인공을 변화시킨다. 전자는 외부 세계와의 화해, 후자는 내면 세계와의 화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성장 서사의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3. 삶을 바라보는 메시지의 결말, 남기는 것 vs 지금을 사는 것
코코는 끝내 미겔이 가족에게 음악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가족 간의 연결을 회복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할머니 코코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장면은, 삶과 죽음을 잇는 가장 감정적인 순간이다. 이 영화는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죽은 자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남은 자들이 그를 기억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즉, 우리는 타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며, 그것이 삶의 연장이 된다는 메시지다. 소울의 결말은 좀 더 철학적이고 조용하다. 조는 결국 꿈에 그리던 공연을 끝마쳤지만, 허무함을 느낀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특별한 순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울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순간들—바람, 소리, 냄새, 대화 속에서—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코코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라는 죽음 이후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소울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남긴다. 두 작품 모두 삶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시선과 뉘앙스는 크게 다르다.
결론: 픽사가 죽음을 통해 되묻는 삶의 방향
소울과 코코는 픽사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탐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코코는 문화와 감정의 언어로 죽음을 따뜻하게 풀어내며, 공동체와 기억의 가치를 강조한다. 반면 소울은 개인의 내면을 따라가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같은 픽사이지만, 각기 다른 철학이 담긴 이 두 영화는 관객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 두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픽사의 정교한 세계관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우리 삶의 방향까지도 다시 묻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