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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홈즈

 

에놀라 홈즈(2020)는 셜록 홈즈의 여동생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낸시 스프링어의 원작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고전 탐정물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젠더와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현대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밀리 보비 브라운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명탐정 셜록 홈즈의 그늘에서 벗어나 ‘에놀라’라는 이름이 어떻게 독립적인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작품은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라, 성장과 독립, 그리고 여성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서사로서 흥미롭다.

 

1. 셜록의 동생이라는 설정, 가족을 넘어선 정체성 찾기

에놀라는 셜록과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막내 여동생으로,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전통적인 여성 교육 대신 어머니로부터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를 배우며 성장한다. 셜록이라는 이름은 추리와 이성의 상징이며, 그와의 비교는 에놀라에게 ‘누구의 동생인가’라는 그림자를 늘 드리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프레임을 깨는 데 집중한다. 에놀라는 가족이라는 배경 속에 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탐험하는 인물이다. 특히 영화 초반부,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에놀라는 이 사건을 단순히 ‘실종 사건’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머니의 흔적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는 단지 엄마를 찾는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자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셜록이라는 거대한 상징은 에놀라에게 도전이자 한계다. 하지만 영화는 에놀라가 셜록의 그림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나아가도록 유도한다. 셜록은 조력자가 되지만, 결코 그녀의 주체성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는 “가문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강화한다.

 

2. 19세기 여성의 자립, 에놀라가 보여주는 저항과 선택

영화는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며, 여성들이 사회적 발언권과 자율성을 갖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짚고 있다. 에놀라는 교육을 받고 싶어 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전통적인 여성으로 키우기 위해 기숙학교에 보내려 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긴장을 상징한다. 에놀라는 이에 저항하며 직접 런던으로 떠나고, 변장, 추리, 체력 등을 활용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남는다. 그녀의 행동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여성의 선택권’을 향한 작지만 강한 반란이다. 특히, 에놀라가 연루되는 정치적 음모는, 그녀가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여성 개인이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영화 속에서 에놀라는 누군가의 연인이나 조력자로 기능하지 않는다. 로맨스 요소는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주된 서사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한 가지의 감정’으로 그려진다. 에놀라가 사랑보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방식은, 기존의 소녀 주인공 서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여성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는 자립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3. 에놀라의 시선과 내레이션, 고전 미스터리를 재해석하는 방법

에놀라 홈즈는 기존 셜록 홈즈 시리즈와 달리, 제4의 벽을 깨는 연출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에놀라가 관객을 직접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은 관객과의 친밀감을 높이고,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이 그녀에게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에놀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모든 사건이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사건과 논리가 중심이 되지만, 에놀라 홈즈에서는 감정, 관계, 성장이라는 요소가 중심을 이룬다. 그녀는 단순히 단서를 따라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 아니라, 사건 속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세상의 불균형을 체감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 이는 이성과 논리 중심의 셜록 홈즈와는 다른 탐정상을 제시한다. 또한 영화는 경쾌한 템포와 밝은 색감, 빠른 전개로 기존 고전 탐정물의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탈피한다. 이는 에놀라라는 캐릭터의 에너지와 잘 어우러지며, 젊은 세대에게 더욱 친숙한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에놀라 홈즈는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며, 고전의 틀 안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결론: 셜록의 동생이 아닌, ‘에놀라’로 살아간다는 것

에놀라 홈즈는 단지 셜록 홈즈 세계관의 확장이 아니다. 이 작품은 한 소녀가 자기 이름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셜록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출발점일 뿐, 에놀라는 ‘누구의 동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목소리가 주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존의 서사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에놀라 홈즈는 타인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이름으로 삶을 설계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