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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는 단순한 멀티버스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수많은 현실이 겹쳐지는 혼돈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정체성 탐색의 여정이자, 가족과 감정, 선택과 무의미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묻는 감정적 서사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슈나트 감독의 기발한 연출 아래, 코미디, SF, 액션, 멜로, 철학이 동시에 뒤섞인 이 영화는 형식의 파괴를 통해 감정의 본질에 닿는다. 그 중심엔 주인공 에블린이 있다.

 

1. 멀티버스가 던지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영화는 세금 보고 하나 제대로 못 해내는 평범한 중년 여성 에블린이, 갑자기 무수한 우주에서 선택된 존재가 되며 시작된다. 수많은 버전의 자신과 연결되며 그녀는 ‘내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나’와 마주한다. 요리사, 가수, 쿵푸 마스터, 심지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에블린까지—그 각각의 우주는 에블린이 인생에서 한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처럼 영화는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가능성 속 하나의 결정일 뿐이라는 전제를 깔고, 관객에게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우리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때로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괴로움을 준다. 에블린은 그 수많은 가능성을 체험하면서, 지금의 자신이 가장 ‘실패한’ 버전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는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수많은 자신을 만난 후에도 결국 ‘지금 이 현실 속의 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선택의 결과이자, 동시에 감정과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수천 개의 우주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결국 그 모든 세계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 무의미의 중심에서 감정의 의미를 되묻다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은 ‘무의미함’이다. 수많은 가능성과 우주를 경험한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사실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공허함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조이(에블린의 딸)가 만든 베이글이다. 이 베이글은 모든 것을 집어넣은 결과이며, 그 안에는 ‘무(無)’가 있다. 조이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무의미를 선언한다. 이 장면은 현대인의 불안과 공허를 대변한다. 정보와 가능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의미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시달린다. 영화는 이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이와 에블린, 그리고 웨이먼드가 각자의 방식으로 무의미함에 맞서는 모습을 통해,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도 감정은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웨이먼드는 "친절하게 대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며 아주 사소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이는 복잡한 세계 속에서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진실이 감정임을 말한다. 무수한 가능성과 허무의 베이글 속에서도, 누군가를 붙잡는 행위 하나가 세상의 모든 무게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다.

 

3. 관계의 회복: 가장 작은 우주에서 가장 큰 감정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우주 전체를 구하는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에블린과 딸 조이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에블린은 조이를 억누르고, 조이는 그런 엄마에게서 도망치려 한다. 그 갈등은 단순히 가족 간의 세대 차이를 넘어서, 존재 자체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조이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나를 그냥 놓아줘." 에블린은 처음엔 그것을 놓아주는 게 사랑이라고 믿지만, 결국 "함께 있어줄게, 끝까지"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오랜 오해와 사랑을 상징한다. 자식을 위한 선택이라는 말 아래 감정이 지워지고, 사랑이라는 말로 통제하려 했던 모든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에블린은 조이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진짜 사랑임을 깨닫는다. 또한 남편 웨이먼드와의 관계 역시, 영화 후반부에서 가장 깊은 감정으로 발전한다. 수많은 현실 속에서도 웨이먼드는 변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폭력이 아니라 대화로, 강요가 아니라 이해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에블린은 이 단단한 사랑을 끝내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인생이 실패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구원을 얻는다.

 

결론: 가장 엉뚱한 형식으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전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혼란스러운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교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멀티버스를 여행하는 엉뚱한 설정 속에서도,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들 속에서, 지금의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는, 당신이 가진 작은 감정 하나가 세상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