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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2021)은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로,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를 넘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과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거액의 상금을 걸고 생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점차 극한 상황 속에서 도덕과 욕망, 신뢰와 배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은 ‘게임’이라는 외형 속에 담긴 깊은 사회적,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캐릭터 각각이 상징하는 사회 계층, 선택의 딜레마, 그리고 관찰자와 참여자라는 구조적 폭력은 오징어 게임을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작품으로 만든다.

 

1. 게임 속 참가자들, 계층 불평등의 축소판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몰락한 이들이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 이주노동자, 탈북자, 사기꾼, 투자 실패자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지만 공통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제도 안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극단적인 ‘게임’에 몰려든다. 이 게임은 그 자체로 사회의 축소판이다. 모두가 공정하게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갖고 있는 배경이나 성격, 협상 능력에 따라 유리하거나 불리한 조건이 생긴다. 상금이 걸린 순간 인간성은 흔들리며, 생존을 위해 점점 더 비윤리적인 선택들이 정당화된다. 알리의 죽음이나 새벽과 지영의 대화, 그리고 일남의 정체까지, 게임 속 모든 사건은 ‘극단으로 몰렸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러한 참가자들의 모습은 단지 ‘가상의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비슷한 불안정 상태에 놓인 이들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상징한다. 오징어 게임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격차와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2. 선택과 딜레마, 도덕성의 경계가 사라질 때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고, 살아남으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택의 딜레마는 참가자들을 끊임없이 도덕적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단순한 놀이가 목숨을 걸고 변형되었을 때,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타인을 밀쳐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특히 유리다리 게임이나 구슬치기처럼, 협동과 배신이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극대화된다. 성기훈과 일남의 구슬 게임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서 ‘타인의 동정’과 ‘기억의 진실’을 교차시키며, 감정적 판단이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새벽과 지영의 대화는 극히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선택할 수 없는 삶에서의 체념과 마지막 존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은 게임을 강제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돌아오기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 설정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불공정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질문하게 만든다. ‘희망’이라는 절박한 감정은 때로 인간을 더욱 가혹한 선택으로 몰아넣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인 착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시사한다.

 

3. 관찰자와 참여자, 폭력의 구조적 정당화

게임을 지켜보는 VIP들의 존재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관을 더욱 냉혹하게 만든다. 그들은 인간의 생존과 죽음을 ‘오락’처럼 즐기며, 현실의 불평등 구조를 극대화한 상징이다. 이러한 설정은 현대 사회의 상층부가 어떻게 하층민의 고통을 ‘거리 두기’하며 바라보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게임의 운영자 황인호와 기훈의 마지막 선택 또한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황인호는 경찰 출신이지만, 시스템에 순응하며 오히려 그 폭력 구조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이는 현실에서 제도와 권력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통제하는지를 반영하는 설정이다. 기훈이 마지막에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고 상금을 택하는 장면은, 우리가 쉽게 도덕적 이상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결국 관찰자와 참여자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게임 밖에서 고통을 감상하던 VIP들도 결국 인간이며, 참여자 또한 누군가에게는 관찰자가 될 수 있다. 시즌1의 마지막, 기훈이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다시 게임을 막기 위해 돌아서며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그 구조를 알고 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론: 생존 경쟁 속에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양면성

오징어 게임은 단지 충격적 설정과 극단적 서바이벌 게임의 연출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도덕과 선택의 경계, 폭력의 정당화 같은 무거운 주제를 게임이라는 틀 안에 정교하게 녹여냈다. 등장인물들은 누구도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으며, 각자의 배경과 욕망 속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나간다. 이 작품을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만약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오징어 게임은 그 잔혹한 질문을 피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던진다. 게임은 끝났지만, 현실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