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 위드 바시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전쟁의 기억과 트라우마

 

왈츠 위드 바시르(2008)는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이 만든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기억과 트라우마를 다룬 영화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들이 사실적인 재현이나 드라마 중심의 내러티브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활용해 감독 본인의 기억, 악몽, 상상, 그리고 현실을 엮어내며 전쟁이라는 경험이 인간의 의식에 어떻게 남는지를 시적으로 묘사한다. 영화는 아리 폴만 감독이 1982년 레바논 전쟁에 참여했던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따라가며, 개인의 기억과 집단의 역사, 그리고 책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던진다.

 

1.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전쟁의 기억과 심리적 거리두기

왈츠 위드 바시르가 가장 독창적인 점은, 전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선택은 단순한 시각적 차별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불확실하고 왜곡된 정신적 이미지를 시각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감독 아리 폴만은 영화 초반부에서 “기억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참전했던 전쟁의 잔혹했던 순간들을 떠올리지 못하며,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은 꿈과 환상, 왜곡된 기억, 과장된 감정 등을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떠오르는 악몽 속에서 벌거벗은 남자들이 바다에서 걸어나오고, 부유하는 개들의 군대가 등장하며, 총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은 사실적 묘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상징들이다. 실사로 찍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이러한 장면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필터를 통해 더 강렬하고 시적인 이미지로 전달된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심리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마주하기보다는, 시각적으로 간접화된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트라우마와 감정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이러한 형식은 전쟁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2. 꿈과 현실의 경계, 기억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영화는 한 남자가 바닷속에서 기어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그가 보는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독이 질문하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아리 폴만은 전쟁 당시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며, 기억의 파편을 찾아 여러 전우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각자가 기억하는 전쟁의 모습이 서로 다르며, 때로는 모순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억이 단순한 사실의 복원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해석, 망각, 죄책감 등이 섞인 복합적인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감독은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며,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의 현장에 도달한다. 이스라엘군이 직접 학살을 자행하지는 않았지만, 그 현장을 방관한 책임이 있다는 집단적 죄책감은 그의 기억에서 가장 깊은 층에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꿈과 현실, 기억과 상상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극 중 한 인물은 자신이 보았던 장면이 실제였는지, 꿈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감독 본인 역시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 순간의 기억만 사라졌는지를 영화 내내 파헤친다. 이러한 서사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인간 내면에 어떤 방식으로 새겨지는지를 탐구하는 깊은 심리극으로 작용한다.

 

3. 마지막 실사 장면이 주는 충격과 영화의 윤리적 선언

영화의 마지막은 전체 애니메이션 내러티브를 뒤흔드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바로, 실제 학살 현장의 뉴스 리얼 영상이 삽입되며,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이 순간, 애니메이션이라는 상징적이고 시적인 서술은 중단되고, 관객은 전쟁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감정과 윤리적 무게를 응축한 순간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얼마나 쉽게 참혹함을 미화하거나 회피하는가?" 이 실제 장면의 등장은 기억이라는 개인적 층위를 넘어서, 역사의 책임과 집단의 윤리적 판단으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전쟁의 기억’은 단순히 병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과 사회가 공유하고, 그 책임을 묻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마지막 장면은 강력한 윤리적 선언이자, 영화가 던지는 궁극적인 메시지로 기능한다. 아리 폴만은 스스로를 고백자이자 고발자로 설정하며, 관객 역시 그 고발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강렬한 체험을 남긴다.

 

결론: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계속된다

왈츠 위드 바시르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의 기억에 어떤 방식으로 남고 왜곡되고 망각되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트라우마와 감정의 파편들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왈츠 위드 바시르는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상처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해주는 영화다. 그 상처는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