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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2014)와 컨택트(Arrival, 2016)는 모두 인간과 우주, 시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 SF 영화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사랑을 통해 블랙홀을 넘고, 다른 하나는 언어로 시간의 구조를 초월한다. 둘 다 과학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결국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감정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인터스텔라는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연출로 우주의 끝에서 사랑을 외치고, 컨택트는 드니 빌뇌브의 묵직한 연출을 통해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이 두 작품은 ‘우주에서의 인간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며,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흥미롭게 탐색한다.
1. 우주와 시간의 구조, 과학을 통한 서사적 접근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웜홀, 상대성이론 등 고급 과학 개념을 서사의 중심에 둔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탐사를 그린 이 영화는 물리학적 현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엮는다. 특히 시간의 상대성—다른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7년에 해당한다는 설정—은 관객에게 현실적 경악과 극적인 몰입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는 딸 머피와 아버지 쿠퍼 사이의 시간 간극을 감정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컨택트는 언어학이라는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시간의 구조를 새롭게 해석한다. 주인공 루이스는 외계 종족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해가며, 그들의 언어 구조가 비선형적인 시간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는 SF 장르임에도 언어학, 인지심리학, 결정론 철학을 교차시켜,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한다. 두 작품 모두 시간이라는 개념을 핵심적으로 다루지만, 인터스텔라는 과학 이론에 기반한 거시적 장치로, 컨택트는 언어와 의식을 통한 미시적 해석으로 접근한다. 이 차이는 서사의 전개 방식은 물론, 관객이 몰입하는 방식에도 뚜렷한 차이를 만든다.
2. 감정의 중심: 사랑인가, 수용인가?
인터스텔라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쿠퍼는 지구에 남겨진 딸 머피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품고 블랙홀을 넘는다. 영화 후반, 브랜드 박사가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하나의 차원일 수 있다"는 대사는, 이 영화가 단지 물리학의 퍼즐을 풀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한다. 쿠퍼는 딸과의 정서적 연결을 통해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도 방향을 찾는다. 결국 이 영화는 과학이 아니라 감정, 특히 사랑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힘임을 강조한다. 반면, 컨택트의 루이스는 ‘수용’을 선택한다. 그녀는 외계 언어를 배우며 자신의 미래, 즉 남편과의 이별, 아이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되지만, 그 모든 비극을 감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선택한다. 그녀의 감정은 절절한 사랑이라기보다, 더 복잡하고 어른스러운 수용과 이해에 가깝다. 감정의 방향이 외부를 향해 있는 인터스텔라와 달리, 컨택트는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감정을 보여준다. 즉, 인터스텔라가 ‘사랑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한다면, 컨택트는 ‘삶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진정한 감정의 성숙임을 말한다. 이 대비는 두 영화가 같은 SF 장르 안에서 어떻게 전혀 다른 감정선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 인간의 위치: 우주의 중심인가, 하나의 조각인가?
인터스텔라는 인류 중심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을 찾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선택과 희생이 있다. 쿠퍼는 인간의 의지로 블랙홀에 뛰어들고, 그 안에서 다시 탈출해 딸과의 연결을 이룬다. 이 영화는 인간의 도전과 희망, 감정이 우주의 냉혹한 법칙을 뚫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적 배경이 있음에도, 영웅 서사에 가까운 구조다. 반면, 컨택트는 인간을 더 겸손한 위치에 놓는다. 외계 지성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진보된 존재이며, 루이스는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좁은 인식의 세계에 살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인간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지적 체계 안의 ‘하나의 퍼즐 조각’일 뿐이다. 이러한 차이는 연출의 톤과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인터스텔라는 고조되고 감정적으로 몰아치는 음악과 장대한 우주 장면이 특징이지만, 컨택트는 차분하고 명상적인 흐름 속에서 하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전자는 ‘우주 속 인간의 승리’라면, 후자는 ‘우주 속 인간의 깨달음’에 가깝다.
결론: 우주를 바라보는 두 개의 감정, 두 개의 철학
인터스텔라와 컨택트는 모두 시간과 우주라는 SF 장르의 전통적 키워드를 사용하지만,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극적으로 다르다. 인터스텔라는 사랑을 매개로 인류의 확장성과 구원을 말하고, 컨택트는 언어를 통해 시간과 감정을 새롭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둘 다 감동적이지만, 하나는 가슴을 뛰게 하고, 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게 한다. 이 두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도전을 택하든, 수용을 택하든,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진정성이다. SF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도 결국 중심에 있는 건 ‘인간’이라는 사실을, 두 작품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