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츠네야마 사에코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일본 영화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로 분류되지만, 사실은 ‘불완전함’을 가진 두 사람이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결국 이별을 선택하기까지의 섬세한 심리와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낸 감정극이다. 특히 조제라는 인물의 상상력과 고립된 세계, 츠네오의 현실적인 시선,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고 다시 벌어지는 과정을 통해,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1. 장애가 있는 주인공을 주체적으로 그리는 방식

조제는 하반신 마비로 인해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보통 영화 속 장애인 캐릭터는 수동적으로 그려지기 쉽지만, 이 작품 속 조제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자신만의 세상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의 동정이나 도움을 마냥 반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처음 츠네오가 그녀의 집에 찾아왔을 때 보이는 태도는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며, 독립적인 인물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그녀는 그림책 속에서 본 ‘호랑이’를 상상하며, 자신의 세계를 보호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낀다. 이 상상은 조제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세상과 관계 맺는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그녀의 두려움이자 동시에 그녀가 되고 싶은 강인한 존재의 상징이다. 영화는 조제를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녀의 장애는 서사에서 중요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녀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는 일본 영화에서 드물게 장애인을 주체적 존재로 묘사한 사례이며, 조제라는 캐릭터의 복합적인 감정이 관객에게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2.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조제의 상상력

조제는 자신의 이름조차 ‘진짜’가 아니다. 본명은 나오코이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 주인공 ‘조제’라는 이름을 차용해 자신을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다. 이는 그녀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자아이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이름을 통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녀의 세계는 좁다. 바깥세상은 위험하고 불편하며,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녀는 방 안에서 소설을 읽고, 상상 속에서 호랑이와 물고기, 혹은 먼 나라를 떠도는 인물을 그리며 살아간다. 이런 상상력은 단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조제가 삶을 견디고 표현해내는 방식이다. 영화는 조제의 상상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며 그녀의 내면을 보여준다. 이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맞서는 조제의 방식이며, 동시에 그녀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시적으로 묘사한다. 조제의 방은 마치 작은 우주처럼 보이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상상은 그녀만의 자유를 상징한다.

 

3. 사랑, 독립, 성장의 경계에서 이별을 선택하는 이유

츠네오는 처음에는 조제에게 호기심을 느낀다. 특별한 존재, 혹은 자신이 지켜줘야 할 대상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조제를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장애인을 향한 동정과 진짜 감정 사이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한다. 츠네오가 조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빠진 것인지, 그 자신도 혼란을 느낀다. 둘은 함께 여행을 가고, 일상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나 결국 츠네오는 조제를 떠난다.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지만, 조제는 말한다. "난 알고 있었어. 당신이 언젠가는 떠날 거라는 걸." 이별은 감정의 부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묘한 안타까움을 남긴다. 조제는 츠네오가 떠난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것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사랑은 조제를 구원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만난 관계는 완벽한 결말로 끝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전한다.

 

결론: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용기에 대하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감정에 빠지기 쉬운 사랑 영화의 틀을 벗어나, 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조제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지만, 영화는 그녀를 어떤 극복의 대상이나 감동 코드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상상력, 자립심, 그리고 성장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따라가며 진짜 삶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사랑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났을 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 대답을 조용히 들려준다. 상처받고도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강한 이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