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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캐롤(2015)은 토드 헤인스 감독이 연출하고,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적 금기와 편견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섬세하고 우아하게 담아냈다. 특히, 캐롤과 테레즈가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그 사랑이 마주하는 현실적 한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1. 금기된 사랑의 시작: 우연 속에서 피어난 감정

영화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백화점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테레즈(루니 마라)는 장난감 매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젊은 여성이고,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세련되고 우아한 중년 여성으로 등장한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눈길을 주며 시작되는 이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며, 카메라는 그들의 미묘한 시선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첫 만남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이 존재한다. 캐롤은 실수로 장난감을 두고 가고, 테레즈는 그 인형을 찾아 그녀에게 돌려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 둘의 대화는 형식적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감정은 깊게 흐른다. 캐롤의 우아함과 자신감은 테레즈에게 신비롭고도 매혹적으로 다가오며, 테레즈의 순수함과 호기심은 캐롤에게 잠시 잊고 지낸 감정을 일깨운다. 이 사랑의 시작은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이다. 두 사람 모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감정의 불꽃을 발견하고, 이는 곧 깊은 고민으로 이어진다. 캐롤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고, 테레즈는 안정적이지 않은 연애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과 가족의 압박 속에서도, 둘의 감정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2. 사회적 금기와 현실의 벽: 감정의 무게를 견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깊어지지만, 그만큼 외부의 압력도 강해진다. 캐롤은 이혼 소송 중 남편과의 양육권 분쟁에 휘말려 있으며, 남편은 그녀의 성적 지향성을 문제 삼아 캐롤을 부도덕한 어머니로 몰아간다. 캐롤은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현실과 타협하려 하지만, 테레즈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자유롭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테레즈 역시 혼란스럽다. 캐롤에게 끌리면서도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의 삶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특히,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테레즈는 캐롤에 대한 감정을 확신하게 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고용한 탐정이 그들을 추적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녹음하면서, 캐롤은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 단순히 개인 간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금기와 직면한 고통임을 강조한다. 1950년대 미국 사회는 동성애를 범죄시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비윤리적 행위로 간주했다. 캐롤은 사랑과 모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현실 속에서 더 큰 상처를 받는다.

3. 선택과 자존: 자유를 향한 발걸음

결국 캐롤은 테레즈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딸과 함께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남편과 합의하려 하지만, 이는 그녀에게 감정적 죽음과도 같다. 캐롤은 법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딸을 잃더라도 스스로를 숨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 자아를 지키려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반면 테레즈는 캐롤과의 이별 후에도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캐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테레즈는 성장했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영화의 마지막, 캐롤이 레스토랑에서 테레즈를 바라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고난을 겪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캐롤의 눈빛에는 여전히 테레즈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다. 이 엔딩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끝난 것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을 향한 여정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결론: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

캐롤은 사회적 금기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는 단순히 금지된 사랑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정성을 추구하려는 몸부림이다. 특히, 캐롤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모성에만 얽매이지 않기로 한 결단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사랑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가?" 캐롤은 그 답을 직접 제시하지 않지만, 사랑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