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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2020)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SF 액션 영화로, 시간 역행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복잡한 서사를 보여준다. 영화는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니라, ‘엔트로피 역전’이라는 과학적 가설을 활용하여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서사를 구축한다.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은 ‘테넷’이라는 조직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미션을 수행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거대한 음모와 맞서 싸운다. 이 영화는 물리학적 개념과 액션을 결합하여, 관객들에게 기존의 영화적 경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1. 테넷에서의 시간 역행이라는 개념,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영화 속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엔트로피 역전’이다. 엔트로피(entropy)란 물리학에서 ‘무질서도의 증가’를 의미하며,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물체가 자연스럽게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것처럼, 시간도 항상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엔트로피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며, 특정한 물체나 사람은 시간을 역행할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 볼 때, 현재까지 엔트로피를 역전시키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적용하여,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움직이는 현재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즉, 시간 여행이 아니라, 한 개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정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 개념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장면 중 하나는 ‘역행 총격전’이다. 주인공은 과거에서 현재로 오는 적들과 싸우는데, 이들은 총알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사된 총알이 다시 총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이러한 연출은 물리학적 개념을 극적인 액션 장면으로 변환하여, 기존의 총격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2. 닐의 정체,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영화에서 주인공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닐(로버트 패틴슨 분)은 처음부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시간 역행에 대한 개념을 주인공보다 훨씬 먼저 이해하고 있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의미심장한 힌트를 남긴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주인공에게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였어. 넌 아직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체에 대한 중요한 암시를 남긴다. 닐이 사실 주인공이 미래에서 보낸 요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 속 시간 구조를 고려했을 때, 닐은 미래의 주인공이 직접 선발한 인물이며, 이미 여러 번의 시간 역행을 통해 모든 사건의 흐름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화 초반부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인공을 구해준 의문의 인물이 닐이었다는 점이 후반부에서 밝혀지며, 그의 정체에 대한 단서가 하나씩 맞춰진다. 또한, 닐의 배낭에 달린 빨간 줄이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처음부터 시간 역행을 거듭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요소다. 즉, 주인공에게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보이지만, 닐의 입장에서는 이미 수차례 주인공과 함께했던 과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테넷이 단순한 선형적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순환적인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된 영화임을 보여준다.
3.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 방식, 왜 관객에게 설명을 최소화했을까?
많은 관객들이 테넷을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관객에게 친절한 설명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SF 영화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할 때, 이를 설명하는 대사가 많지만, 테넷에서는 "너무 깊이 이해하려 하지 마. 그냥 느껴."라는 대사가 이를 대변한다. 놀란 감독은 영화에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영화 속 캐릭터들이 시간 역행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 자체가 관객이 직접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도 처음에는 시간 역행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직접 체험하면서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관객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혼란스럽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테넷의 연출은 비선형적인 편집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순차적으로 연결되지만, 테넷에서는 시간이 역행하는 캐릭터와 순행하는 캐릭터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가 해체된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들에게 기존 영화 문법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한 번만 봐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결론: 시간과 운명을 개척하는 새로운 방식
테넷은 단순한 시간 여행 영화가 아니라, ‘시간을 조작하는 방식’ 자체를 새로운 형태로 탐구한 작품이다. ‘엔트로피 역전’이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시간 역행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액션 장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또한, 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순환적인 시간 개념을 제시하며, 크리스토퍼 놀란 특유의 비선형적 내러티브를 극대화한다. 이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테넷은 단순한 퍼즐 영화가 아니라, 시간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