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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와 로마(2018)는 각각 미국과 멕시코를 배경으로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포착한 작품이다. 두 영화 모두 아이들의 시선 또는 그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빈곤과 생존을 다루지만, 연출 방식, 감정의 전달, 그리고 궁극적인 메시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현실을 날것 그대로 그려낸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서정적 기억으로 재구성한 로마는, 가난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지를 서로 다른 온도로 말한다. 이 두 영화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주목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을 바꿔놓는다.
1. 플로리다 프로젝트 vs 로마, 연출 스타일의 대비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적인 질감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션 베이커 감독은 실제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촌에서 촬영하며, 아마추어 배우들과 전문 배우를 섞어 극도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낸다. 카메라는 무니와 친구들의 눈높이를 고수하며, 그들이 뛰어노는 모텔 복도,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장면, 낡은 간판과 색바랜 벽들을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게 담아낸다. 이 세계는 화려한 테마파크 바로 옆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그 모텔촌이 ‘놀이터’이자 ‘왕국’이다. 감독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계를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반면, 로마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선택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반추하듯 영화를 구성한다. 흑백 화면과 정적인 롱테이크는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아련함을 강조한다. 카메라는 인물들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이를 통해 관객은 클레오의 감정에 과도하게 개입하기보다는, 그 시대와 공간의 분위기를 머금으며 조용히 목격자가 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지금, 여기’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면, 로마는 ‘한때 존재했던 시간’을 애틋하게 기억해낸다. 같은 ‘빈곤’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시점과 촬영 방식,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감정의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
2. 아이들의 시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철저히 아이들의 세계를 따른다. 무니는 어른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세상은 여전히 신나고 놀라운 곳이며, 그녀는 하루하루를 모험하듯 살아간다. 하지만 관객은 무니의 천진함 이면에 가득한 위험과 위태로움을 본다. 모텔 월세를 내지 못하는 엄마,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 매춘과 마약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이 모든 것은 무니의 인식 바깥에 존재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세계를 조여 온다. 플로리다는 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여줌으로써, 관객 스스로 이 현실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만든다. 반대로, 로마에서는 어린이들이 아니라 클레오라는 어른의 시선이 중심에 있다. 물론 영화 속 아이들은 순수하고 무구하지만, 세상의 불안과 변화는 클레오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클레오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숨기며 아이들을 돌본다. 주인집 가족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조용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버텨낸다. 그녀의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헌신의 연속이다. 로마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탐색하지 않지만, 그들이 보호받기 위해 어떤 보이지 않는 희생이 존재하는지를 클레오를 통해 조명한다. 플로리다가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아이들의 모험을 그린다면, 로마는 보호자 없는 세상의 위태로움을 조용히 경고한다.
3. 가난과 가족, 생존을 그려내는 온도 차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경제적 빈곤이 가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무니와 그녀의 엄마 할리는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비합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할리는 딸을 위해 목숨처럼 싸우지만, 그녀의 선택들은 점점 더 아이를 위험에 빠뜨린다. 영화는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니의 웃음과 장난 속에 서서히 다가오는 절망을 담담히 쌓아간다. 마지막 장면, 무니가 보호소로 끌려가기 직전 디즈니월드로 도망치는 환상적인 시퀀스는, 관객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를 안긴다. 현실은 잔혹하지만, 무니는 끝까지 꿈꾼다. 그것이 그녀가 생존하는 방식이다. 로마는 다른 방식으로 가난과 가족을 이야기한다. 클레오는 본인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후에도 울부짖지 않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녀의 사랑은 조용하고, 희생적이다. 영화는 그녀가 일하는 가족 내에서도 명확한 계급 차이를 드러낸다. 가족은 클레오를 좋아하고 아끼지만, 언제든 '고용인'으로 선을 긋는다. 클레오가 겪는 비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다. 로마는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담긴 슬픔과 존엄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못지않게 묵직하다.
결론: 다른 세상, 다른 방식, 그러나 같은 인간성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로마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션 베이커는 아이들의 눈으로 빈곤을 환상처럼 바라보게 만들고, 알폰소 쿠아론은 가정부의 조용한 사랑과 헌신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다. 둘 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힘을 이야기한다. 플로리다는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여전히 뛰놀고 있을 아이들의 숨결을 들려주고, 로마는 먼 과거의 기억 속에 묻힌,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사랑의 서사를 꺼내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을 얼마나 진심으로 바라보고 있는가?"